유럽,아프리카2010. 3. 26. 16:42
카이로 거리를 걸어 다녔다.

두바이에서 새벽에 출발, 중동의 사막을 줄곧 보면서 이집트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이집트라는 생소한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무척이나 컸었다. 이집트 하면 꼭 교과서 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것들이 떠올라 기대가 부풀러 있었던 것이다.

처음 접한 카이로는 황량한 이미지였다. 항공기 창으로 보이는 것은 뿌연 사막이었고 공항 건물은 시골 대합실처럼 상당히 허름했다. 가지고 갔던 달러로 이집트 비자를 사고(15$) 이집트 파운드를 환전 하고 나서 입국수속을 하고 공항 밖을 나왔다.

공항 밖을 나오니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더 심했다. 주변에 건물이라고는 눈에 띄질 않고 버스 정류소도 없고 어떻게 도심으로 가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사정이 있어 첫날 호텔도 잡지 못한 상황이라 마음이 더 조급했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사막 같은 풍경보다 당장 타고 가야 할 버스의 번호판이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생소한 아랍어라는 사실. 이 때문인지 우리뿐만 아니라 배낭여행으로 온 한국인들 모두 당황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문 밖으로 나와서 30분쯤을 허둥거렸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국인들끼리 아는 모든 영어를 동원해 버스를 1, 2터미널을 왕복했지만 실패. 당황스런 와중에 카이로를 떠나려고 택시를 타고 온 한국여행객의 택시와 겨우 흥정해서 람세스역까지 40파운드(7,200원)에 타게 되었다.

카이로에 널리고 널린 한국차, 인기가 많다고 한다.

처음부터 택시는 고려하지 않았던 게 이집트 택시는 바가지로 정말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택시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는 너무나 당연한 듯한 모습들. 이집트에 있는 내내 이 바가지 요금 때문에 정떨어질 만큼 피곤했다.

택시의 운전실력은 지금껏 타본 택시 중 단연 최고였다. 차들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마구잡이로 달려가는데 사고 안나는 게 이상할 정도. 한국인들 운전하는 정도는 여기서는 거의 애교 수준일 정도로 험악하고 위험하다.

택시는 공항에서 만난 K양과 함께 탔다. 그녀는 혼자서 1개월간 이집트 배낭여행길에 오른 상태였다. 여행기간이나 일정이 달랐지만 다음달 룩소르로 같이 가기로 하고 람세스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예약하러 함께 이동했다. 사람이 한 명이라도 같이 있으면 좀 편하게 대화가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타흐릴 광장 주변 모습.

지하철의 안내 표지판.

하지만 예약은 순탄하기는커녕 힘든 대화가 또 시작됐다. 역의 모든 열차시간표는 글자와 숫자 모두 아랍어. 영어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적고 숫자는 아랍어로 적은 종이를 줘서야 겨우 기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예약하는 기차표는 손으로 직접 쓴 조그만 종이 한 장.

람세스 역에서 호텔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은 싼 이용요금 1.5파운드(270원)지만 여자들은 이곳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각오를 해야 하고 땀냄새도 잘 견뎌낼 각오를 하고 타야 한다. 지하철의 1, 2번 칸은 여성전용이므로 여자들끼리만 다니면 이 칸을 타는 것이 좋을 듯. 공항에서 같이 왔던 K양은 지하철에서 헤어지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했다.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 유물은 비좁을 정도로 많다.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

호텔을 잡고 제일 먼저 들른 곳은 고고학 박물관.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에는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놓기도 했던데 이제는 카메라의 반입을 X-Ray 기계로 철저히 막고 있어서 휴대폰 카메라 정도가 아니면 가지고 갈 수도 없게 만들었다. 사진 찍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인데 카메라를 맡겼더니 의욕상실.

박물관은 면적이 좁은데 어찌나 유물이 많은지 힘은 힘대로 들었다. 무엇을 봤는지 거의 기억은 나질 않고 투탕카멘 유물과 미이라 정도가 고작이었다. 입장료는 40파운드(7,200원).

박물관을 나와서 아타바 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나라의 남대문 재래시장 같은 곳이어서 볼거리를 생각하고 갔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어서 그런지 안내판도 없고 한참을 골목을 찾아 다녔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40도에 가까운 더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 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Chinese부터 입에 담기 힘든 속어까지 등장. 시장 입구를 둘러보다 포기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바가지에 시달리고 시선에 시달렸더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이집트에서의 첫날 여행을 일찌감치 접었다. 이집트에서 단, 하루 만에 느낀 것은, 바가지에 시달리고 시선에 시달리고 더위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쉐라톤 호텔에서 바라본 카이로의 야경.

쉐라톤 호텔에서 바라본 카이로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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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느릿느릿느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