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사 고가의 담장.
고성군 청광리에 있는 박진사 고가은 고성 여행을 준비 하면서 숙박 장소로 처음 찍어둔 곳이었다. 전문적인 숙박 시설은 아니지만 전통가옥에서 묵을 수 있게끔 마련된 곳으로 오래된 한옥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안타깝게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 다른 곳에서 묵게 되었지만 꼭 숙박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러 볼 계획이었기에 고성에서 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러 보았다.
고성군 청광리에 있는 박진사 고가은 고성 여행을 준비 하면서 숙박 장소로 처음 찍어둔 곳이었다. 전문적인 숙박 시설은 아니지만 전통가옥에서 묵을 수 있게끔 마련된 곳으로 오래된 한옥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안타깝게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 다른 곳에서 묵게 되었지만 꼭 숙박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러 볼 계획이었기에 고성에서 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러 보았다.
박진사 고가가 여행지도에 나올 만큼 유명한 이유는 조선 후기 사대부 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전통 가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서다. 총 7개의 동으로 지어진 고가는 안채와 사랑채 2동, 곡간채 2동, 대문간채, 마구간동으로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그만 마을에 있는 가옥의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들여다 보기에 아주 좋은 건축물인 셈이다.
박진사 고가의 안채.
안채와 사랑채 중간의 진고방.
전통 가옥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저런 설명을 뒤로 하고 개인적으로 고가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사랑채 앞의 정원이었다. 넓지 않은 정원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나무들은 정리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사랑채에 앉아서 차라도 마시면 신선 놀음이 따로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한밤이라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공간이기도 했다.
정원이 인상적인 사랑채.
원래 박진사라 불리는 이 가옥의 선조들은 대대로 용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기묘사화 때 화를 피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 함양을 거쳐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대로 효자 집안인 것도 자랑거리. 박효근(1800~1853), 박영희(1823~1886) 2대에 걸쳐 효행상을 받기도 해 대문 앞 “효자 정려”라는 현판이 걸려있기도 하다. 박진사 고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박효근의 아들인 박한회가 진사 벼슬을 지내면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문에 거려 있는 효자 현판.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고가의 모습.
전통 가옥의 생김새도 궁금하긴 했지만 박진사 고가를 찾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옛 정취가 묻어나는 가옥과 담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이 더욱 크다. 오래된 가옥을 배경으로 찍는 이 곳만의 풍경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동마을 담장과 견줄만한 담장 또한 배경으로 잘 어울렸다.
고가를 나와 둘러본 곳은 현재 고가를 관리하고 있는 노부부의 집 정원이었다. 아무래도 노부부가 살기엔 고가가 불편하다 보니 고가 옆에 별도의 집을 마련해 살고 있었는데 그 뒤로 있는 조그만 정원은 사랑채 안의 정원과 대비가 되었다.조각 작품 몇 점이 잔디밭에 놓여 있으니 꼭 미술관 모습 같기도 했다. 과거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할까.
박진사 고가에서 묵으려면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항상 손님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노부부가 집을 비워 숙박을 할 수 없다. 식사는 제공되지 않지만 따뜻한 안채나 사랑채에서 독특한 1박을 보내고 싶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어두운 곳, 불편한 곳 싫은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지도.
고가 밖에 있는 현대식 정원.
박진사 고가의 안채.
안채와 사랑채 중간의 진고방.
전통 가옥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저런 설명을 뒤로 하고 개인적으로 고가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사랑채 앞의 정원이었다. 넓지 않은 정원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나무들은 정리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사랑채에 앉아서 차라도 마시면 신선 놀음이 따로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한밤이라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공간이기도 했다.
정원이 인상적인 사랑채.
원래 박진사라 불리는 이 가옥의 선조들은 대대로 용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기묘사화 때 화를 피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 함양을 거쳐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대로 효자 집안인 것도 자랑거리. 박효근(1800~1853), 박영희(1823~1886) 2대에 걸쳐 효행상을 받기도 해 대문 앞 “효자 정려”라는 현판이 걸려있기도 하다. 박진사 고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박효근의 아들인 박한회가 진사 벼슬을 지내면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문에 거려 있는 효자 현판.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고가의 모습.
전통 가옥의 생김새도 궁금하긴 했지만 박진사 고가를 찾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옛 정취가 묻어나는 가옥과 담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이 더욱 크다. 오래된 가옥을 배경으로 찍는 이 곳만의 풍경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동마을 담장과 견줄만한 담장 또한 배경으로 잘 어울렸다.
고가를 나와 둘러본 곳은 현재 고가를 관리하고 있는 노부부의 집 정원이었다. 아무래도 노부부가 살기엔 고가가 불편하다 보니 고가 옆에 별도의 집을 마련해 살고 있었는데 그 뒤로 있는 조그만 정원은 사랑채 안의 정원과 대비가 되었다.조각 작품 몇 점이 잔디밭에 놓여 있으니 꼭 미술관 모습 같기도 했다. 과거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할까.
박진사 고가에서 묵으려면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항상 손님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노부부가 집을 비워 숙박을 할 수 없다. 식사는 제공되지 않지만 따뜻한 안채나 사랑채에서 독특한 1박을 보내고 싶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어두운 곳, 불편한 곳 싫은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지도.
고가 밖에 있는 현대식 정원.
스팸 댓글이 늘어 로그인 한 사용자만 댓글을 허용하였습니다.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으시면 방명록에 남겨주세요.^^